DVD와 초컬릿

Process 2008. 5. 26.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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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필라델피아 미술관에서 벤자민 프랭크린 거리를 내려다 보다가 예전에 있었던 에피소드가 한가지 떠올랐습니다.  회사 동료들하고 대화중에 어쩌다 벤자민 프랭크린이 이야기가 나왔는데 저는 프랭크린 다이어리 만든 사람이라고 했고, 누구는 과학자라고 했고, 누구는 정치가라고 했습니다. 결론은 셋 다 맞았죠.

역대 최고 천재 Top 10 이라는 기사를 보는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흔히 아인슈타인을 떠올리지만 아쉽게도 IQ가 160밖에(!?) 안 되어서 순위 안에 없습니다. 1위는 괴테인데 그는 과학자이자 문학가, 정치가 입니다. 2위는 다빈치. 그 역시 예술가이자, 과학자, 기술자면서 철학가였죠. 다른 사람들도 대부분 마찬가지였고요.

저는 이 기사를 보면서  만약에 다빈치 같은 천재가 우리나라에 태어나 고등학생 되어 진로를 결정하려고 하면 과학자가 되기 위해 자연계를 가야 하나, 철학가 되려고 인문계를 가야 하나, 기술을 배우러 실업계를 가나 아니면 예술가의 꿈을 갖고 예고를 가야 할까 궁금해 지더군요. 이렇게 학습분야를 두부 자르듯 딱 부러지게 구분하는 것은 정말 사용자(학생)중심이 아니라 학교 중심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실 없는 이야기를 시작 하게 된 계기는, 얼마 전에 UX 디자이너를 리쿠르팅 중이라는 한 디자이너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UI라고 하면 뭐 하는지 알겠고, 디자인도 알겠는데 UX라고 하면 뭐 하는지 조금 뭐랄까 여전히 명확하지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어떤 기획자 분이 "UI개발이라고 하면 전체 프로세스에서 특정부분을 담당할 수 있지만 UX라고 하면 개발 프로세스 전체에 관여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딱히 특정 부분을 책임지지 못하고 여기저기 다 참견 해야 해서 결국은 조직으로서 유지되기는 힘들지 않겠느냐" 라는 취지로 쓴 글을 본적이 있습니다. 어떻게 여러분들도 위 문제에 공감을 하시는지 모르겠네요.

UX 디자이너들의 역할이 명확하지 않고, 전체 프로세스 중 명확하게 특정부분을 담당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다 참견 하는 게 문제라는 이슈로 돌아가면, 저는 그게 문제로 인식 되는 상황이 오히려 생각해볼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관리자에게 보고를 할 때는 이해하기 쉽게 최대한 간단하게 도식화해서 표현하는 것이 좋겠죠. 프로세스를 네모박스 딱딱 쳐서 화살표로 연결하고 담당자도 박스 안에 넣어서 이 사람이 이 일을 합니다 라고 단순화 시키는 것이 필요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과제가 실제로 그렇게 컨테이너벨트 위에서 장난감 조립되듯이 단계별로 명확하게 구분되어 진행되지는 않습니다. 사실 과제의 프로세스라는 것은 사용자들에게는 전혀 중요하지 않죠. 이 제품이 개발되기 까지 얼마의 기간이 소요되었는지, 얼마의 인력이 투입되었는지, 어떤 단계를 거쳤는지는 그 회사의 관리자나, 경쟁사 벤치마킹 하는 다른 개발자들에게나 중요한 일이지, 소비자들은 알 바 없습니다.

실제로 팀에서 아이디어 회의를 하다 보면, 별 이야기가 다 나옵니다. 마케팅 방법부터 시작해서 사회제도 개선 환경보호나 정치문제까지도요. 그러다가 주로 우리는 제조업체니까 단말기 안에서 할 수 있는 일 중심으로 생각해 보자 라는 쪽으로 수렴하게 됩니다. 어떻게 보면 정말 무책임한 일입니다. 식당에 간 손님은 음식의 맛뿐만 아니라 식당의 인테리어, 가격, 교통, 음악, 조명, 식기, 종업원의 서비스등 다양한 요소들로부터 종합적인 사용자 경험을 받습니다. 그런데 어떤 식당 주인이 ‘죄송합니다. 제가 요리가 전공이라 음식 말고 다른 것들은 제가 알 바 아닙니다’ 라고 한다면 그 음식점은 십중팔구 망하겠죠. 마찬가지로 제조회사라는 것은 우리에게나 중요한 것이지 사용자에게는 전혀 고려대상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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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전자제품 매장에 메모리카드를 사러 갔을 때 DVD 판매 코너에서 초컬릿을 같이 팔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영화 보면서 먹으라고요. DVD와 초컬릿은 공급자 마인드로 생각해보면 절대 같이 있을 수 없는 조합입니다. 선행연구분야도 다르고 기획자도 다르고 개발자도 다르고 유통구조도 다를 테고요. 사용자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으면 DVD와 초컬릿의 조합은 나올 수 없습니다. 

좋은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서라면, 자장면 배달하면서 담배 심부름도 할 수 있고, 해물탕 집에서 어린이 손님을 위해 돈까스를 주문받을 수도 있고, 냉장고 AS하러 가서 벽에 못도 박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제품을 개발할 때에도 자기의 전문분야가 아니라고 외면하는 것 보다는, 열린 마음을 가지고 다양한 분야를 고려해야 하고요. 뿐만 아니라 관리자 입장이 아닌 사용자 입장에서 프로세스 전체를 고려 하는 일, 이것이 UX 담당자의 역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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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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