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사무실은 고층빌딩에 있어서 점심시간이나 퇴근시간이 되면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잡기가 무척 힘들었습니다. 일단 위에서 사람이 꽉차면 우리층은 그냥 패스해 버리는데다가, 막상 엘리베이터 문이 열려면 이미 거의 꽉차있어서 몇 명 못타는 그런 상황이 한참 동안 반복되었죠. 성격 급한 사람은 짜증이 나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탔다가 다시 내려오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아마 비슷한 경험이 한번씩은 있으실 것 같아요. 

그러던 어느날 이런 공고가 붙었죠. 뭐 이리저리 돌려서 부드럽게 말하긴 했지만 요점은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타지 말아라 전체적으로 더 느려진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후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잡아 타는 일은 적어졌지만 당연히 불만은 커졌습니다. 올라갔다 내려오면 왜 더 느려지는가? 라는 의문은 차치하고, 이런 시스템이라면 윗층 사람들이 모두 내려온 다음에야 내가 내려갈 수 있는것은 아닌지, 몇 층인지 피드백도 없는 상황에서 마냥 내앞의 엘리베이터가 열리기만 기다리면서 왜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해야 하는지 불만이 생기게 마련이지요.

상황을 더 간단하게 정리하면 엘리베이터 앞에 있는 사람의 니즈는 “빨리 내려가고 싶다” 인데 여기에다가 “전체적인 효율” 이라는 사용자는 전혀 관심 없는 이유를 들이대며 니즈를 충족하는 행동을 하지 못하게 하는 상황이 사용자 중심하고는 거리가 멀어 보였습니다. 

오른쪽 사진을 보세요. 무심코 1층까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렸다가 "엇? " 하면서 다시 돌아가 찍어온 사진 입니다. 저는 이 엘리베이터를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 것을 보기 전까지는 엘리베이터에 상행/하행 버튼이 각각 따로 있어야 한다는 것에 한번도 의문을 가진적이 없었거든요. 내가 올라가려고 하던 내려가려고 하던 애초에 버튼이 하나 입니다. 물리적으로는 두개의 버튼을 하나로 뭉쳐놨을 뿐이지만, 저 작은 차이가 인간중심으로 행동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사용자는 버튼을 누른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면 탄뒤 원하는 층에서 내리면 그만입니다. 정말 단순하죠.

 

종종 엘리베이터안에서 “닫힘버튼을 누르지 마세요” 라고 적혀있는 안내문을  볼 때도 손가락이 근질 거립니다. 닫힘 버튼을 누르지 않는 것이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는 지는 모르겠지만 이때도 앞선 상황과 비슷하게 사용자는 빨리 닫고 올라가고 싶은데 자기와는 별로 상관없는 이유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못하게 하는 것이죠. 멀쩡히 있는 버튼을 못누르게 하는것은 메뉴판에 적혀 있는 먹고 싶은 메뉴를 주문 못하게 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일 것 같습니다. 물론 아예 메뉴판에 없었다면 불만이 되고 말고 할 것도 없습니다. 위 사진들의 닫힘 버튼이 없는 엘리베이터들 처럼 말이죠.

당연히 있어야 한다고 여겨졌던 것들. 어쩌면 없어도 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엘리베이터 이야기를 하는김에 하나더 기억나는게 있는데, 학회 때문에 들렀던 도시 중심가 주차빌딩의 엘리베이터 입니다. 여기에는 숫자대신 기억을 도와주는 정보가 번호 옆에 덤으로 붙어 있었는데요. 주차빌딩처럼 모든 층이 동일한 구조의 빌딩에서는 이런게 더 필요 할테죠. 요는 무조건 단순하게 만드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상황에 맞게 사용자를 배려하는것이 필요 합니다. 사실 이 경우에는 뭐 딱히 우리나라보다 사용자를 더 고려해서 한 디자인이라기 보다는 Cultural Difference 인것 같지만요. 



Posted by 진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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